2004년 박영선 화백 10주기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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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작가로서 보기 드물게누드작가로 알려진 박영선(1910∼1994) 화백의 10주기 추모전

평양 태생인 박영선 화백의 누드는 여인의 우윳빛 피부가 감미로워 한번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서정성 넘치는 필치로 그려진 여인 좌상이나 소파나 침대에 누운 나부(裸婦)들은 인상으로 보아서는 젊은 한국여성이다. 그러나 그 얼굴들은 미술평론가 이구열씨가 지적하듯이 옆얼굴은 대개의 경우 그만의 이상적 취향으로서의 미인형인 서양여성 같은 갸름한 용모와 오똑한 코의 예쁜 균형으로 변용되곤 하였다.

그것은 곧 박영선의 전형적인 여인상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를 가리켜 ‘도시적인 감각을 가진 화가’라고 했다. 박 화백은 누드뿐 아니라 농촌생활과 향토적인 자연환경의 정취를 담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1970년의 작품 ‘농부와 가족’은 이 시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의 고궁을 비롯, 꽃과 과일을 소재로 삼은 감칠맛 나는 정물화도 많이 그렸다. 누드 아니면 정물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정적인 운치가 있는 정물을 즐겼다. 사실주의 경향의 화풍에 서정성을 적절히 가미시키고 있다. 박 화백은 17세에 한국 양화의 선구자들로 알려진 평양 출신의 김관호와 김찬영이 1925년에 개설한 회화연구소에서 정식으로 유화기법을 배운다.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 유학 시절엔 천재화가 이인성과 교류를 하기도 했다. 45세의 늦은 나이에 파리의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에서의 수학은 그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시대와 역사에 동적으로 화답한 류인과 정적으로 관조한 박영선의 예술세계를 세대차를 넘어 비교해 보는 것은 또 다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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